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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Book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by 규게 2020.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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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우리 SF의 우아한 계보, 그 후

지난겨울까지 바이오센서를 만드는 과학도였던 김초엽 작가는, 이제 소설을 쓴다. 「관내분실」로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부문 대상을 받았다. 필명으로 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도 동시에 상을 받았다. ‘한국 SF의 우아한 계보’라 불리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초엽 작가는 그 후, 더욱 도약했다. 자신만이 그려낼 수 있는 김초엽 특유의 작품세계를 보여주었다. 투명하고 아름답지만 순진하지만은 않은, 어디에도 없는 그러나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근사한 세계를 손에 잡힐 듯 이야기에 담아냈다.

다섯 개의 위성이 뜨는 곳에서도, 지지 않는 마음

표제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는 매력적인 ‘할머니 과학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인물을 통해 소설은 어째서 어떤 고통은 기꺼이 감내할 수 있는지, 생의 끝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무엇인지를 자꾸만 묻는 듯하다. 문학상 이후 김초엽의 작품들은 더욱 확장된 세계를 그려낸다. 작가의 고민과 질문도 더 단단해진듯하다. 다섯 개의 위성이 뜨는 행성에 홀로 남겨져 외계인과 조우하게 될지라도(「스펙트럼」), 고통 없는 유토피아에서 짐짓 모르는 것처럼 질문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때에도(「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세계를, 우리의 세계를 알아야겠다고 용기 내는 마음, 우리의 사랑과 우정을 말하며 지지 않는 마음, 분투하는 태도가 김초엽의 소설에는 있다.

소녀들의 영웅이 금메달리스트일 필요는 없다

김초엽은 정상과 비정상, 성공과 실패,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를 끊임없이 질문한다. 미션에 실패했다고 비난받는 우주인일지라도(「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어떤 소녀에게는 그의 존재 자체가 응원일 수 있다. 무엇이 성공이고, 무엇이 실패인가. 우주 미션에는 실패했지만, 소녀를 응원하는 일에 성공했다면 그 삶을 실패한 삶이라 할 수 있을까. 소녀들의 영웅이 금메달리스트일 필요는 없다. 경계에 선 소설가 김초엽은 고민과 질문을 쨍하게 빛나는 이야기로 들려준다. 그것도 아주 재미있게.

 


 

 

 

 

 

리디 셀렉트를 이용하고 제일 처음으로 선택한 책이다. 아니, 끝까지 읽은 책이다. 사실 처음에 골랐던 책이 있는데, 유명한 책치고는 굉장히 재미가 없어서 반의 반도 못 읽었다. 사실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가 나조차도 의문이다. 원래 단편이 엮여있는 책을 좋아하긴 하는데, SF는 취향이 아니라서.... 영화도 책도 SF는 글쎄. 어쩌면 운명이었나!? 는 개소리고, 하여튼 간만에 추리를 벗어나서 너무너무 재밌는 책을 읽어서 기분이 좋았다. 같이 읽었으면 좋겠으니까 추천추천.

 

영화도 감독이 중요하고 책도 작가가 중요한 나니까 작가님 설명 한 번 듣고 갑시다. SF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선택한 이유가 요 작가 설명에 있다. 

 

포스텍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생화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사실 공부보다 모니터 속에서 시간 여행을 떠나거나 새로운 상상을 해 보는 일이 좀 더 즐겁다.

 

글을 쓰시는 작가님이 화학으로 석사까지 하셨단다. 그런 분이 쓰는 SF는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가 궁금했다. 나 또한 뼛속까지 이과생이고 공대를 졸업한 사람으로서 작가와 얘기를 나누고 싶었달까. 지금 생각하니까 아주 거만하구만... 결론은... 첫 번째 단편을 읽고 '응?' 했던 기억이 난다. 이 사람 범상치 않은 사람이구나 싶었다. 총 7개의 단편 중에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굳이 굳이 굳이 TOP을 뽑자면,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공생 가설>. 두 개를 뽑겠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는 과학 기술이 발전된다고 해서 정말 행복한 세상이 되는지, 모두를 위하는 게 맞는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단편인데, 과학이 짱이라고 믿는 나는 읽는 내내 입술에 침을 바르게 되더라. 편지를 쓰는 듯한 포맷도 이 단편에 아주 탁월했다고 생각한다. <공생 가설>은 상상력 그 자체에 너무 놀라서 진짜 오랜만에 책 읽으면서 소름이 돋았다. 앞에 복선을 깔고 뒤에 빵 하고 터뜨리는 무언가가 있는데, 스포는 안 되니까 뇌에 힘을 주고 꾹 참고 있다. 제발 이 단편을 읽은 누군가가 나랑 얘기 좀 해줬으면 좋겠다. 그거 짱이더라, 한 마디면 되니까. 구체적이면 더 좋고. 하여튼 짱이에요. 작가님 사랑해요...

 

이 책에 실려있는 단편들의 공통점은, 엄청난 상상력을 바탕으로 탄탄한 스토리가 짜여 있다는 것.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과 소통하고 있다는 것. 얼마나 고귀한 책인지 다들 좀 알아주고 읽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랑 얘기해주세요........ 나는, 보통 SF라고 하면,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면서 이거 미래에 실현된다고 우기는 스토리가 대부분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전공이 도움이 되셨을까, 아니면 그냥 타고난 분이실까. 잘은 모르겠지만, 이 단편들은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아주 매력적이고 구체적인 소재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표현법이 부족한 공대생은... 이럴 때 눈물이 난다. 진짜 짱이에요, 읽어주세요... 밖에 못하는 내가 너무 싫다.

 

그럼 스토리만 매력적이냐. 그것도 아니다.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나는 이 작가님의 문체가 너무 좋다. 댓글에 보니까 문체가 마음에 안 든다는 댓글이 좀 있던데... 나는 좋았다. 간결했고, 구체적이었으며, 논리적이었다. 지금 생각하니까 이과생이 좋아할 만한 문체인가...? 여튼, 덕분에 즐겁게 필사했고 필사 공책을 5페이지나 채웠다.

 

사진은 필사 중에 조금만 떼어왔다. 나름 스포가 되지 않을 정도의 문장만 데려왔는데, 어느 정도가 스포라고 하는지 모르겠어... 조금의 내용도 먼저 알고 싶지 않다면 읽지 않는 걸 추천합니다. 내 글씨 이렇게 크게 보니까 굉장히 민망하군...

이건 뜬금없는 얘긴데, 필사를 같이하는 친구가 말해주기를 이 책 제목을 줄여서 '광속불가'라고 부른대요 ㅋㅋㅋㅋ 귀여워.

 

사실 모든 단편의 처음부터 끝이 마음에 들었던 건 아니고, <감정의 물성>은... 이해를 못하고 끝났다. 소재를 이해 못했다는 게 아니라, 이야기 속 인물들의 감정을... 이해 못하고 끝이 났다. 혹시 이해하신 분이 계시다면 저에게 설명을 좀 부탁드립니다. <관내분실>은 엄마와 딸에 대한 이야긴데, 읽으면서 훌쩍훌쩍 울었다. 사실, 딸들은 웬만하면 다들 우실 거다. 마음 속에 누구나 가지고 있는 무언가를 건드리는 문장들이 엄청 많다. 그런 문장들 몇 개를 뽑아서 엄마한테 보내드렸는데, 엄마도 우셨다더라. 역시 글의 힘은 대단하다. 책이 너무 좋아서 다 읽기도 전에 종이책으로도 사려고 결심했는데, <관내분실>을 읽고 나서는 한 권 더 샀다. 엄마 드리려고.

 

아, 그리고... 무시하는 건 절대 아닌데...... 소재가 구체적이긴, 하지만 너무 아무런 과학지식이 없거나 상상력이 없으면 좀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전공책 같은 그런 어려움은 아니니까 꼭 읽어보셨으면 졓겠다.......... 

 

10점 만점에 1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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